코미디언 이기동씨 사업실패와 기타 여러가지 역사단상




1. 보통 인터넷에서 도는 여러 이야기들중에는 단순 착오나 혹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이야기의 선후 단계가 바뀌는 경우가 은근히 많습니다. 굳이 이런 것을 가정해서  만든다면 "한국전쟁의 원인은 남한에 있다. 남한이 정예부대를 베트남에 파병했기 때문에 여기에 위기를 느낀 김일성이 남침을 결행한 것이 한국전쟁의 결정적 원인이다"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봅시다. 한국전쟁은 김일성이 일으켰고 베트남에 남한이 파병한 것은 사실입니다. 근데 뭐가 잘못된 겁니까?

이 가설은 강아지도 안 먹고 천안함 조작설을 주장하는 모 게시판 정도의 대가리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입니다만 실지로 이런식의 이야기들이 꽤 퍼지고 그것이 심지어 일반적인 상식으로까지 변하게 되는 것이지요. 거기다 정치성이 결합된다면 더 이상 말이 필요없습니다.

<이기동과 권기옥 권귀옥(수정했습니다)- 둘이 명콤비였습니다.>


2. 70년대 초인기 코미디언인 이기동씨가 있었습니다. 원래 연예계와는 무관한 육군장교 출신이었고 뚱뚱한 풍채와 걸직한 입담. 그리고 슬랩스틱을 적절히 조합한 특기로 한 시대를 풍미할 정도였지요. 요새로 하면 달인 "초기"의 김병만 정도의 이미지였는데. (유명한 "닭다리 잡고 삐악삐악"이 바로 이분이 개발한겁니다)물론 김병만은 키가 작고 근육질인 반면에 이 사람은 땅딸이라는 애칭이 무색할 정도의 체형에 적절한 예능감은 사실 김병만은 물론이고 지금의 어떤 개그맨 이상의 퀄러티를 가져왔습니다. 물론 지금은 후술할 여러 문제로 인해서 완전히 잊혀졌지만요.

이분에 대해서 최근에 인터넷에서 도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70년대 유명한 이기동씨라는 코미디언이 있었다.
(2) 정치적인 탄압으로 전두환 일당에게 걸려서 출연정지를 먹었다.
(3) 그래서 음료 사업에 투신했다가 망했고(이건 전두환이 망하게 했다는 버전도 있음) 그래서 실의에 빠져서 죽었다.

입니다. 바리에이션으로 중간에 삼청교육대 갔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왜 나만 갖고 그래?>


자. 이게 과연 "한국전쟁이 베트남 파병에 두려움을 느낀 김일성의.."수준일까요?

<영광의 얼굴들- 아시는 분이 있다면 오해가 아닙니다>


이 사진을 보시면 당시 신군부가 연예인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상당히 많은 분들의 출연금지를 발표했습니다. 그때는 광주의 피냄새가 채 가시지도 않은 80년 8월 30일입니다. 여기서는 간단하게 사회에 물의를...로 했지만서도 대략 이야기를 들어보면 간통, 대통령 술자리에서 노래 부르기, 몇명과 구멍동서, 대마초, 등등의 여러 혐의가 있었고 개중에는 타방송 출연이나 피디에게 상납 미비나 잠자리 거부(...) 같이 밉보인 일로서  엄한 혐의로 걸려있는 분들도 계셨습니다만은... 이기동씨의 경우는 이 소식이 나오자 마자 사람들이 "역시 그래서 그랬군 ㅋㅋㅋ"내지는 "사업하다 사고쳤으니 뭐"라는 평을 들었었습니다.

자, 그럼 왜 이런 인기 코미디언이 갑자기 출연정지가 되었을까요?

<진실을 알아볼까요?>


3, 이기동씨가 음료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직 전두환이 군바리였고 박정희 대통령이 서슬퍼렇게 살아있는 70년대 후반입니다. 음료 사업이라고 음료를 만들어 파는 건 아니구요. 정확하게 말해서는 요새 갑을관계로 말 많은 N유업의 예처럼 음료 공장을 차리고 대리점을 모집해서 일종의 프렌차이즈 유통업체를  만든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신문에서 이야기 했듯이 당시 맞수였던 배삼룡과 경쟁 관계로 만든 건데요. 땅딸 사와.라는 건 이기동씨의 평소 별명인 땅딸이에서 딴 것이고 사와는 Sour의 일본식 발음으로서 일종의 야쿠르트+ 쿨피스의 조합이라고 보면 됩니다.

사실 이런게 뭐 지금도 꽤 많은데요. 김병만이 달인XXX식으로 음식접 사업을 한다던가 혀경환의 XXX 같은것. 이렇게 유명인이 차리고 유명인의 이름 달고서 대리점을 모집해서 사업을 하는건 그 자체가 불법일리는 없고 잘만된다면야 유명인의 인지도 효과로 큰 돈을 벌수도 있고 지금도 몇몇 연예인들이 뛰어드는 나름 매력적인 아이템이긴 한데..


<경향신문 1979년 7월 광고입니다>

땅딸사와는 쪼올딱 망했습니다.

<사업 넓힌자의 말로>


4. 흔히 이야기 하는 이회창의 흙오이 사건이라던가 비와 이효리의 라디오 대담 같이 "실제 봤다는 사람은 있어도 실체는 확인이 안된" 경우가 많은데요. 이기동의 땅딸사와는 "광고는 그렇게 했건만 실제 먹어본 사람은 없는" 신비의 음료입니다. 

이기동이 아예 맘먹고 사기치고 유령회사를 차렸다는 이야기부터, 처음에 소규모로 시작하려던 공장 설립이나 체인점 모집이 막상 유명세를 등에 업고 돈이 많이 들어오자 빚까지 내서 무리하게 대규모로 한 탓에 자금압박이 심해져서 기계 도입등의 계약이 취소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투자금을 날렸다는게 있는데 후자가 정설입니다. 즉 아예 아무도 모르게 시작해서 작은 공장을 차려서 넓혀야지 무리하게 전국 체인점 모집등으로 몸집을 불렸다가 빵하고 터졌다는 것이지요.

2010년대에도 연예인이 물의를 일으킨다면 방송 출연이 어렵습니다. 자기 재산만 날리고 망신만 당하는 "도박"의 경우도 상당히 오랫동안 출연이 어려운데(아예 구제불능인 신정환은 물론이고 김준호나 황기순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이기동씨의 경우는 대리점 모집으로 인해서 남의 돈(지금도 그렇지만 대리점 모집 광고에 퇴직금 들고 오는 가장들이 줄을 섰습니다.) 에 손실을 입혀서 사회에 크나큰 물의를 일으킨 것이지요. 그렇다면 굳이 전두환이 아니더라도 문민 정부라 할지라도 연예인이 이정도 추문에 휩싸이면 사실상 방송 복귀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당장 피해자들이 방송사를 가만두지 않을건데요 ㅎㅎ

더군다나 사업확장 과정에서 동료 연예인들의 돈을 융통한 일부터 여러 잡음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많은 연예인들이 동료들이나 피디의 탄원등으로 나름 복귀가 빠르거나 생활에 어려움이 없던 것과 달리 이전의 명성에 비해서 상당히 빠르게 몰락한 케이스가 되었습니다. 사실 저기 나온 연예인들의 명망을 보더라도 상당히 뻔뻔한 일로 출연정지를 먹었음에도 이후 조금씩 풀려서 지금까지도 과거세탁을 하고 커리어를 이어가는 분들이 많지요.

이기동씨도 1982년에는 이미 공식적으로 출연정지가 풀렸고 웃으면 복이와요 등의 여러 작품에서 잠깐 잠깐 얼굴을 비추었습니다만. "오늘 이기동이 나온다"정도의 화제만 불러일으켰고 이후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고 이주일 선생이 TV 에 게스트로 나왔을때의 반응이나 이후 이야기를 본다면 확실히 업계에 적응하지 못한것과는 다르지요.



미성년자 관련 문제로 TV에서는 볼수 없는 송영창씨나 이경영씨의 경우는(사실 후자는 좀 억울한 면이 있지만서도) 그래도 연극이나 영화쪽으로 커리어를 넓혀나가서 지금은 꽤 그쪽에서는 잘나가고 있습니다만 이기동씨는 이런거 없이 완전히 파묻혔습니다. 개그계의 커리어가 완전히 바뀌어서 TV에 사람들이 출연하지 않을때도 엄용수와 마찬가지로 나름 행사로 먹고 살거나 원로로 대우받았던 걸 보면 이전 사건의 피해가 얼마나 있는지 알만하지요.
 
이후 89년에 간관련 질환으로 사망한 기사가 잠깐 떳고 빠르게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5. 자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여기서 재미있는 가정이 있습니다. 30년 40년 뒤에 누군가가 또 다시 "사실은 고영욱은 이명박 정권의 탄압을 받았다"거나 "김준호가 한동안 TV에 안 나온건 박근혜 때문이다"라는 설을 풀어본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 사람들이 영원히 혹은 한때 TV에 나오지 못한 건 무슨 무슨 이유인지는 다 알겠지만 시대를 모르는 꼬꼬마들이나 모 게시판 유저들 같은 정신상태의 분들이 그걸 100% 신봉해서 연예인을 탄압하는 MB OUT 무현 알티 바랍니다.를 외칠지도 모르겠군요 ㅎㅎ

ps: 이기동씨는 앞서 말했듯이 슬랩스틱 코미디와 만담을 적절히 조합한 대가라고 볼수 있습니다. 영화도 나름 몇편 나왔는데요. 그중 유명한게 똑똑한 동생을 뒷바라지 하는 형의 이야기를 그린 "남자 가정부"입니다. 80년대 공중파에서도 몇번 방영을 했고 이런류의 영화중에서는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문제는 이 작도 무려 "리메이크"라는 점, 원판은 구봉서씨가 남자 가정부로 나온 흑백영화입니다.

가끔 조선일보 같은데 나오는 "내가 혹은 내 부모님이 이민 간건 작게는 박정희부터 크게는 대 일본제국의 탄압때문이다"라고 드립치는 분들이 있지요. 실제 독립운동가나 민주화 운동가인 경우는 별로 없고 대부분 "부도 내고 도망간 김사장" "바람피나 눈맞고 배맞아 도망간 최선생" 부류가 많은터. 이런쪽에서 대인은 뭐니뭐니해도 무려 공화국으로 도망간 인간말종 오길남이니. 이기동선생도 외국이나 갔다가 돌아와서 종편쪽에 나왔으면 꽤 볼만했겠습니다. 지금도 무슨 민주투사정도로 칭송할 정도니 ㅎㅎ

웬지 김종학 피디가 오버랩되네요 ㅎㅎ

말많던 삼룡사와는 제품 자체는 출시되었다고 합니다. 주로 대구나 광주쪽에 지방에 살던 분이 먹었다고하는데... 야쿠르트 3개를 한꺼번에 먹는 맛이랍니다. ㅎㅎ

삼청교육대 설은...글세요. 삼청교육대에 대한 이야기가 6월 항쟁 이후에 발표되었을때도 언급조차 없었습니다. 삼청교육대에 대한 수많은 기록들과 수기에도 언급이 되어 있지 않는데요. 이 사람의 유명세(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라면 6월 항쟁 이후에 증언이나 목격담등으로 언급은 되었어야 했겠지요. 단 초단기 코스로 갔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덧글

  • 행인1 2013/07/28 09:56 #

    그러고보니 신군부는 '선배'들의 예를 착실히 본받으려 했음인지 사방팔방에서 '정화사업'을 벌였죠.(정치계나 언론사는 물론 중정이나 국과연도 해당)
  • 이준님 2013/07/29 18:19 #

    그쪽 이야기도 개그죠
  • 2013/07/28 11:5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7/29 18:1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7/28 12:2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7/29 18:1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PKKA 2013/07/28 23:22 #

    이준님께서는 항상 흥미로운 글을 쓰시는데 글의 출처들은 어떻게 되나요?
  • 2013/07/29 18:2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DreamersFleet 2013/08/09 18:27 #

    말로만 듣던 이기동 선생님. 나이 든 분들이 저를 이기동이라고 하더군요. 역시나 좋은 말은 아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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