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당시 북한 포로수용소 잡설(유엔군을 중심으로)
... 원래 이 글은 Lewis H Calson이 한국전 당시 유엔군 포로들의 증언담및 기타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펴낸 Remembered Prisoners of A Forgotten War를 참고로 모 사이트에 올린 글을 편집한겁니다.

1. 한국전에서 볼수 있는 가장 독특한 이야기는 '포로들의 자발적 선택'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원인과 결과는 좌-우, 한겨례-조선이 완전히 다른 해석을 하고 있고 누구나 인정하는 건 바로 이러한 '선택'의 문제 덕분에 휴전 회담 자체가 대단히 오래 끌었다는 것입니다. 즉 미국이 말한대로 "포로들의 인도적 선택"을 위해서 포로가 아닌 병사들과 민간인들이 무진장 죽었다는 결과이지요. 그리고 남과 북 모두 "포로에 대한 생각" 보다는 "포로를 통한 자신들의 이념의 우월성"에 대한 선전효과를 노렸다는게 진짜 이유이지요(염불보다는 잿밥 -_-;;)

2. 하여간 이런 선전전덕분에 전후 대략 1백여명 이상의 한국군 포로와 21명의 유엔포로가 전쟁 후 '공산권 잔류'를 공개적으로 선언합니다. 한국정부로서는 1백명에 대해서 더 이상의 흥미를 주지 않았고 이들 모두는 '잊혀'지고 한명도 한국에 돌아온 적이 없습니다.-숙청이 되었건 일성이가 잡아 먹었건 어쨌건 일단 북한에 흡수되었죠. 다만 21명의 유엔포로들에 대해서는 여기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지요.

3. 참고로 알아둘 것은 최근에 이슈가 되는 '국군포로'문제와 이 공산권 잔류 포로들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이 둘을 같은 걸로 치부하는데요. 사실 정전회담 규정에 의해 이 '상대방 진영 잔류 선택 포로'들에 대해서는 남-북 양측에서 공개적으로 설득 작업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많은 포로들이 그 방침을 철회하고 돌아옵니다. ( 서울신문에서 나온 '주한미군 30년사'에선 약간의 반공적인 내용으로 그리고 있고 회담 당시 인도 대표의 회고록에 보면 상당히 시니컬한 이야기로 이때를 다룹니다.)

최근에 남한으로 탈출한 많은 '국군포로'들은 이러한 '잔류 포로' 명단에 들어 있지도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4. 사실 수용소에서는 크게 '진보주의자' ( Progressive) '반동분자' ( Reactionary) 쥐새끼(Rat) , 침묵하는 다수로 구분 됩니다. 침묵하는 다수야 적당히 배급이나 타먹고 학습활동에서 박수나 처주고 자기 일을 방해받지 않는 한에서는 협조도 저항도 안하는 지극히 소시민적인 미국인의 대다수입니다. ( 아마 이 글을 쓰는 저나 많은 분들이 이런 쪽이겠죠 ^^)

진보주의자는 일단 공산주의 학습에 개근하고, 몇몇 찬양 연설이나 학습회에서 성과를 거두고 재대로 협조하고 '자본주의의 마수에 빠진 자신에 대한 눈물겨운 후회'의 고백서를 쓰는 쪽입니다. 뭐 학습회나 이런거 끝나고 나서는 이 분들 이름이 '공개적'으로 게시판에 나오는터라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런 수준이죠.

반동분자는 수용소 당국의 처사에 저항하는 부류입니다. 반공 영화에 보는 그런 영웅적인 분들로 생각하기 쉬운데요 . 사실 이런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수용소내의 상습 탈출자, 수용소내의 물건을 훔치는자등 범죄인 ,학습회 거부자, 진보주의자들에 대해서 비난하는자,고향으로 부터 받은 편지-한국군과는 달리 유엔군은 적십자를 통해서 고향과 연락이 가능했습니다. -_--에 보니 자동차를 타고 있는 악질 부르조아 --;; 등등입니다. 재밌는 건 극히 일부지만 포로 생활 이전에 이미 자신의 부대에서 이런 저런 말썽을 피운 전력자들이 이번에는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일을 한다는 점이죠. 역시 군대가 체질에 안 맞는 일인지도.

이러한 반동분자들의 경우는 '마구잡이로 총살'하는 건 반공 영화나 나오는 이야기구요, 보통 1년 이상의 중노동형, 결박형 ( 밥먹고 화장실 갈때 제외하고는 손을 수갑으로 묶음), 동료 수용자들 앞에서 자아비판 내지는 반동분자 캠프로 이송해서 '잊지 못할 특별관리'에 처하는게 대부분이었습니다.

쥐새끼는 말 그대로 '캔디 몇 알, 통조림 한 두개'에 휘말려 수용소 내에서 스파이를 해먹는 그런 쓰레기 인간을 의미합니다. 보통의 경우 수용소 생활 경험자들이 '진보주의자'들은 동시대에 비난을 해도 어느 정도 세월이 가면 그들을 용서하거나 혹은 '같이 잡힌 부하들을 위해서 진보주의자가 된 장교'의 군사 재판에서 증언을 해줌으로서 무죄를 주는 일이 많았습니다만 이런 쥐새끼들에 대해서는 참전용사들 사이에서도 대단히 비판적입니다. 실지로 '반동분자' 세명이 귀환후 아칸소주에 사는 '쥐새끼' 한 명을 찾아가서 -호텔에서 술집 여자에게 50달러를 주고 방을 알아내었다죠-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 전직 쥐새끼께서 '남자로서는 상상도 할수 없을 만큼 질질짜고 손을 싹싹 빌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 패지도 않고 그냥 놔뒀답니다. --;)

5. 문제는 공산권 잔류한 21명인데, 재밌는건 실지로 그 누구도 21명중에 '쥐새끼'가 있다고 하는 참전 용사가 없었습니다. 약간의 진보 성향이 있는 포로가 있었지만 악명높은 쥐새끼는 없었고 오히려 의외의 인물이 남았다고 놀라기도 했는데요. 전쟁 직후 미국 언론에서는 이들을 '마약 중독자, 가정 파탄자, 인간쓰레기'쪽으로 비난하게 됩니다. 물론 많은 수가 가정에 문제가 있지만 가정 문제를 든다면 당시 미 육군의 평균적인 수준보다 잔류 포로가 차라리 건전한 편이었습니다. -_-;;;

당대의 연구를 보면 대략 2명이 대학 입학,한명은 졸업, 3명은 고등학교 졸업,  대부분이 기독교인, 3명이 결혼, 나머지는 한국이나 일본 여자와 동거 경험 있음 -_-;; 전과자 2명 ( 1명은 교도소, 1명은 소년원) 20명이 직업군인 1명은 징집병, 벨기에 이민자 출신 하나 ( 장교가 될수도 있었는데 국적문제로 인해서 좌절) 그리스 이민 2세 1명 ( 부모님이 그리스 공산당 당원- 대부분의 증언으로는 이 사람만이 진정으로 공산주의에 심취 되었다고 함, 단 쥐새끼는 아님), 흑인 3명 (동료 흑인 포로들이나 고향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결코 공산주의자나 쓰레기는 아니지만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주의에 혐오감을 느꼈다고 함)

6. 이 중에 그리스계 미국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경우 잔류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미국과 중국을 오가게 됩니다. ( 북한에는 아무도 안 살았습니다.) 1955년 7월에 최초로 3명이 미국행을 선택하게 되고, 군사 재판을 받게되지만 불명예 제대 비슷하게 해서 석방후 정착, 1958년에 다시 8명이 미국으로 귀국합니다. 66년까지는 두명만 중국에 남고 모두 귀국, 단 체코, 폴란드, 벨기에및 영국( 영국군 포로)으로 간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반공 회고록을 쓰거나 중국 음식점을 하거나 조용히 그러나 불명예를 안고 살아갑니다. 이 글의 자료가 되는 책의 저자가 인터뷰를 할수 있었던 건 단 한명 클래런스 아담스의 딸 ( 이미 당사자는 고인이 되었음 중국인과 흑인의 혼혈) 인데요, 그가 딸에게 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1950년 후퇴 당시 흑인 포병대를 일부러 후위부대에 남겨놓은 탓에 대부분의 동료가 전사했고 수용소내에서의 인종 차별주의에 대한 좌절 그런 영향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등으로 인해서 중국에 정착했고 대학에서 학위 ( 솔직히 당대 미국 흑인이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어떻게 받을수 있는지?)를 받고 역시 대학생인 중국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중국이 문화 혁명의 시대가 조금씩 다가오자, 그는 가족들과 귀국을 결심하고 미국행 비자를 얻으려고 했으나 실패, 나중에는 가나 대사관을 통해서 -이런 일이 있을줄 알고 친분을 쌓았다고 함- 비자 발급을 요청하고 가나로의 이민 제의를 거절하고 간신히 미국으로 왔고 세관이나 마을, K.K.K단으로부터의 협박과 모 대학의 교수 제의를 거절하고 조용히 살았다고 합니다.

7. 전쟁이란 너무나 많은 비극과 다양한 인간상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행각에 대해서 차마 옳고 그름을 판정하는게 바람직한 일일까요?  바로 저 자신이 그 상황에 어떻게 처신할지 생각하면 함부로 남의 이야기 하기가 그렇지요. (사실 한국전 당시 한국군 포로중에 영웅적인 저항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없지요. 원래 없는게 아니라 아마 처리 되었겠지만)

ps: 반공물과는 완전히 다른 역사 비평사 포로수기 '돌아온 패자'에 보면 한국군 귀환포로들에 대해서도 대단한 고민과 상호 학대에 대한 문제가 나옵니다. 이건 미국 역시도 마찬가지 였다고 합니다.

귀환포로들중에 가장 큰 문제가 미 해병대의 슈아블 대령건이지요. 딘 소장을 제외하고는 가장 고위 포로이고 딘과는 달리 공개적 전향과 정보 누출및 "정교한 세균전 자백"을 한 걸로 악명이 높아요. -_-;;; 최근에 읽은 모 대체 역사물에서의 일본에 생포된 외계인 조종사건이 바로 이 사람을 모델로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by 이준님 | 2007/03/09 11:41 | 역사단상 | 트랙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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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措大 at 2007/03/09 13:31
좋은 포스팅 잘 읽었습니다 ^^;

슈아블 대령은 대략 아쉬운 인물이죠. 2차대전 당시에 세운 공훈은 꽤 대단했던 것 같은데. 어째서 그런 식의 길=_=을 갔는지. 이 인물이 혹시 만추리아 캔디데잇의 모델이던가요?

어쨌든 그도 석방 후 귀국해서 전역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역 당시 별을 달아주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Commented by marlowe at 2007/03/09 16:33
저는 [광장]이 떠오르네요. 모두에게 사랑받지는 못해도, 최소한 경멸받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건 불가능한 일인가 의문이 듭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3/09 19:21
6번의 그 흑인은 정말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군요....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7/03/10 12:17
조대님//세균전 논쟁은 할배군단이 올거 같아서 못 올리겠군요. "그림자 없는 저격자"의 모델은 아닌것 같구요. 슈아블은 100페이지 넘는 군법 회의 기록을 남기고 전역하는 걸로 마무리 됩니다. (회고록을 쓰기는 하는데 개판이고) 말씀하신데로 전역때 1계급 승진해서 예비역 준장이 되지요. 재밌는건 자백 번복이건 아니건 간에 세균전 논쟁이나 한국전 참전 관련 여러 인터뷰에서도 슈아블은 인터뷰를 거부합니다. (나토 사령관을 지낸 영국 장교가 포로 생활의 학대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를 했던 것과는 다르죠)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7/03/10 12:19
marlowe 님//그렇지요. 더군다나 유엔포로들의 경우는 대부분 "세대적으로 쓰레기"라고 사회학자들의 연구대상까지 되었죠. 위의 텍스트의 저자는 포로 생활중에 전향이나 비겁한 일은 2차 대전때도 비일비재했고 베트남 전쟁에서도 문제가 되었지만 유독 한국전 참전 포로출신들은 사회적으로 매장당했다고 개탄합니다.

행인1님//그래도 살아남는게 남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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