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도 절반의 미흡- 8월의 폭풍서평 역사단상




사실 군사.. 특히 전사라는게 굉장히 딱딱한 서술입니다. 물론 작성자의 개인적 느낌이나 정치성향이라는게 들어 있지만( 80년대 한국전사에는 대놓고 북괴의 야욕 운운이 들어가있습니다) 대부분 "사실의 나열"(그것이 제한된 정보하에서 있지만) 그리고 후세의 교훈이라는 점에서 때로는 상업성을 포기한 글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방대한 영역의 전쟁사 서적은 대부분 상업적으로 출판을 하지 않거나 시장에서 빨리 사라지게 되고 그래서 보통의 경우는 도서관을 이용하거나 PDF로 풀리는게 대부분입니다. 그게 어느 나라나 공통적인 한계라고 볼수 있지요

밀리터리 매니아들에게 인기영역인 2차 대전에서 마이너리그 영역을 꼽자면 의외로 8월 초부터 9월 2일까지 있었던 소련의 정식 대일선전포고후 양측의 적대행위 종료싯점에서 벌어진 일 소 격전을 들수 있습니다. 방대한 영역에서 그 전역을 마이너라고 하기는 애매하지만. 아무래도 냉전하에서 소련측 기록의 비접근성. 8월 15일 덴노의 포츠담 회담 수락 종전선언 "후"에 많은 격전이 있었던터라 더더군다나 일반인의 관심이 덜했던 것도 사실입니다.(일본측 입장에 대해서는 후술하겠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이 서술은 또 다른 특이성이 있습니다.

일단 2차 대전의 유산으로 1910년 이래로 구 일본제국령이었던 식민지 조선은 이념체계가 서로 다른 국가 두개가 섰습니다. 아예 미국의 영향인 대한민국의 경우는 냉전하의 "적국"의 전사이기 때문에 접근이 불허되는 경우가 있었고 그러다보니 "소련은 전쟁이 다 끝날때 뻔뻔스럽게 개입해서 얼마 싸우지도 않고 이겼다"거나 혹은 "만주 작전에서의 소련은 3선급 군대로서 이들이 어부지리로 분단의 원흉이 되었다"라는 서술이 군사학적이 아닌 저자들로부터 버젓히 나오는 실정이었습니다.

반면 북한에서는 정권의 정당성을 위해서 적어도 정권초기에는 김일성이 이끄는 만주 항일 빨치산이 소련과 "어께를 나란히 하고" 싸운것을 강조했습니다만 김일성 우상화가 본격적으로 실행되면서 소련의 역할은 대폭 축소되고(그러나 부인하지는 못하고) 김일성이 영도하는 빨치산이 "독자적으로 조선을 해방"하고 소련은 "충실한 조언자"로서의 역할이 되었습니다.  (실질적으로 70년대까지는 북한에서의 단독 승리영화들이. 80년대 소련과 우호적인 방향에서 나온 조-소 합작물들에서는 소련의 "조력"이 강조됩니다.)

이러한 지극히 정치적인 서술을 지양하고 이 책은 순수한 군사학적 측면에서 소련의 만주전역을 분석한 작입니다.

이 책은 광활한 동북 3성 영역을 소련의 작전 전구로 분석하고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시기의 만주작전을 세세하게 분석합니다. 단순한 서술이 아닌 지극히 "소련의 입장"에서 작전의 개요와 결과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카더라나 미시적인 경험이 아닌 전체적인 작전구도로 해당 전역을 분석하는 저자 데이비드 클랜츠의 서술특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저서라고할수 있습니다. 이미 4년 넘는 독일과의 격전을 통해서 충분히 기동전과 보급체계에 대해서 실전 경험이 풍부한 소련군이 자신의 교훈을 이국적인 만주전선에서 유감없이 발휘한 것으로 보면 됩니다.

한국의 일부 비평가들이 지적하듯 "백만 넘는 군대를 시베리아를 통해 이동"하는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유감없이 보여주었고 그것이 향후 유럽에서 소련과 격전을 치뤄야 할 미국의 입장에서 충분히 연구될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 주제와 함께 걸프전의 교훈까지 담은 이 책은 굉장히 뜻깊은 저서이고 그에 따른 번역도 자칫 오역이나 딱딱할수 있는 특성의 책을 아주 괜찮게 번역하고 있지요. 학문적인 유용성과 재미를 동시에 추구할수 있고 어느 정도는 성공한 책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도가 좋은 만큼 어느 정도 한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는 이 책 자체는 작전의 상대방인 일본의 입장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이 작만 본 분이라면 "굉장히 강력한 관동군에 대해서 소련이 일방적으로 승리"한 것으로 알수 있겠지만 적어도 1945년의 관동군은 이미 주력이 대부분 태평양과 중국에서 증발한 탓에 이름뿐인 상태가 정말 많았습니다. 심지어 당시 완편 미군 4개 사단 수준이 전체 관동군의 수준이라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였구요. 더군다나 소련의 각 작전에 대한 일본측의 반격과 반응에 대한 서술이 굉장히 부족합니다.

이런 점은 데이비드 글렌츠 본인의 특성이라고 볼수있는데 "지나친 독일 위주의 전사 설명"으로 편향된 서방의 기록을 고치고자 "지나치게 소련위주의 설명"으로 교차검증이 부족한 약점이 이 책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물론 원서 자체가 이렇더라도 적어도 편집등에서 이런 부분 보충 설명이 단순 각주가 아니라 따로 평전처럼 나와야 하는게 더 중요하지 않았나 할 정도입니다. 특히 서독이나 일본은 서방권에서는 "자료구하기가 쉬움"에도 이 부분이 미흡한건 어쩔수없는 일이지요

번역본의 편집이나 구성은 솔직히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표지도 굉장히 얇고 길게 된 것이 무슨 화보집을 연상케합니다. 물론 영화로 보는 세계의 역사같은 일부 서적도 이런 양식이지만 그건 가로로 길고 글의 구성도 줄이 넓지만 이 책은 세로로 긴 양식에 글구성이 지나치게 빡빡해서 안 그래도 읽기 어려운 책을 더 딱딱하게 하고 있지요. 보통 이 책보다 못한 국문과 교수 논문집 정도만 해도 양장 표지에 고급판을 하는 세상에 이 책이 굳이 문고판도 양장도 아닌 어정쩡한 편집을 한건 이해할수 없을 정도입니다.

내용을 재료. 번역을 요리로 비유하면 약간 고개를 갸우뚱할 재료를 정말 괜찮게 요리해도 그릇을 투박한 시장 용기에 담아 신문지에 싸서 주면 그걸 맛보려고하는 사람이 없어요. 딱 그런 케이스입니다.

결론적으로 밀리터리나 역사 관심있으신 분들에게 반드시 추천할책이지만 번역 제외 기타 다른 요소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덧: 훨씬 내용 추가가 되어있는 개정판이 나왔다는데 이전판이 번역된건 개인적으로는 마케팅의 문제라고 봅니다만

역자는 일본에서 만주작전의 관한 책이 안나오는 걸 개탄하셨는데 이건 좀 다른 의미로 봐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전 연구서는 굉장히 많이 나왔습니다만 (해방직후., 6.25. 대간첩전 작전등등) 5.18을 군사학적으로 다룬 책은 없는것이나 같은 이야기입니다. 5.18에 대한 역사나 증언집. 문학작품들은 수도 없이 나왔습니다만 "비정규 무장세력이 점거한 도시를 정규군이 사상자를 최소화 하면서 진압하는" 작전 분석은 안 나온. 아니 못나온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물론 군 내부에서는 다루었을수 있지만 그 주제를 군사학적으로 다루기에는 5.18이라는게 워낙 무거운 일이듯이 일본의 2차 대전 경험에서 만주작전의 패배(그리고 그 와중에 벌어진 천문학적인 민간인 손실과 군 고위층의 방기. 잔학행위)는 군사학적인 서적 이전에 너무 많이 다루어진 스토리라서 트라우마를 건드릴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덧글

  • 로그온티어 2019/03/22 18:42 #

    북괴의 야욕 ㅋㅋㅋㅋㅋㅋ 그거 어감좋네요 기억해 놔야 겠어요.
  • 2019/03/22 20:2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더카니지 2019/03/23 00:59 #

    앗 이준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블로그 그만두신 줄 알았어요...ㅠㅎ 언제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진보만세 2019/03/23 19:46 #

    6.25 서막과 8월 폭풍의 유사하게 겹쳐지는 부분이 트라우마를 자극했고 이 점이 편파적인 시각을 낳지 않았을까 합니다..

    아울러 귀환을 진심으로 감축드립니다 ^^
  • PKKA 2019/03/28 17:33 #

    서평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역개루 카페에도 올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서평에서 의문이신 분들은 나중에 트랙백으로 포스팅을 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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