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일본의 선전화(전쟁 기록화) 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 역사단상




(전략) 그것은 전쟁화의 미국 이송이 단지 GHQ내부의 의견만으로 실행되었기보다는 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화가들에 의해 그들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묻어두려는 의도에서 추진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해주기 때문이다. 이후 일본에서 이들 전쟁화의 일반공개를 회피내지 거부하는 "전쟁화 봉인"의 일부로 규정한 것도 드러나지 않는 세력.즉 전쟁화를 그렸던 유력 미술가들에 의한 전쟁화의 미국 이송을 지적한 것이다.

김용철 아시아 태평양 전쟁기 일본 전쟁화의 전후 행방

(전략) 패전후 일본 미술계는 후지타 스구하루등에 대해 전쟁책임을 추궁하는 논의가 일어나 후지타는 쫓기듯 일본을 떠나 프랑스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외 서양화가나 전쟁 찬양 천황을 옹호한 요코야마 다이칸등은 면죄되어 화단의 중추적 존재로 살아남았다.(중략) 아이러니컬하게도 후지타는 프랑스로 가버렸기 때문에 안전한 존재가 되었고 그래서  일본인사이에 완전한 망각을 면했다. 종전후 20년을 경과한 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전쟁화 연구는 어떤 의미에서 후지타를 망각의 늪에서 소환하여 구하는 작업이라고 할수 있다.

기타하라 메구미  전쟁화를 그린 여성화가 하세가와 하루코와 여류 미술가 봉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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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좀 덧붙이자면

1.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전시 선전화는 미국 GHQ에서 전량 압수되서 미국으로 이송됨. 일본 정부는 물론이고 해당 당사국(이를테면 싱가포르 전투에 참가한 영국이나 인도네시아에서 투항한 네덜란드. 뉴기니아에서 싸운 호주 같이)에서 자국이 참여한 전투를 그린 그림은 넘겨달라는 요청이 있었음에도 미국에서는 전부 압수해버림. 그런데 당대 여러 증언에 의하면 오히려 화가들이 앞장서서 GHQ에 자기 그림을 바쳤고. 아예 이송시키는데 관여했음

이유야 "과거 세탁"(...) 실지로 일본화가 모임은 미군정시기 미군 찬양 그림을 제작하기도 했음... 이런 사람들이 전쟁때 선전화를 그린게 공개적으로 나오면 애매하니까... 그냥 미국에 넘겨버림

2. 미국에 이송된 전쟁화들은 일종의 소문으로서 수장고에 보관되었고 미국방문한 학자들이나 미술가들에 의해서 부분부분 공개되는 선에서만 처리되었다가 1970년대 미국측에서 "영구대여"를 조건으로 일본정부에 전부 넘겨줌

3. 역사적인 유물 발견으로 일본에서는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작품전을 벌이려고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과 동남아 국민들의 민족감정을 자극시키지 않이야 한다"는 이유로 공개불허에 처해졌고 극히 일부만 조금씩 공개됨(지금은 거의 공개되었는데 많은 부분은 유료감상이 가능) 민족감정은 핑계고 사실 화단의 거장들이 이런거 그렸다는게 x팔려서 화단에서 로비했다는게 정설임(..)

4. 전후 예술가들의 전쟁책임론이 불거질때 전쟁때부터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화가 후지타 스구하루만 욕을 먹고 아예 일본을 떠나버림.. 대신 대놓고 천황찬양을 한 세력을 살아남고.. 하지만 세옹지마라고 70년대 전쟁화 공개및 도록 작성때 후지타 스구하루의 여러 작품들이 재발견되어서 각광을 받게 되었다고 함

..근데 친일문학이나 저기 월북 작가들의 작품들 이야기를 보면 우리도 일본 예술가들 비웃을 처지는 아닌데? 아닌말로 80년대까지는 "아무개 선생님이 일제시대에 일본군 찬양한 작품"들은 제목도 들어보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지 않나?




덧글

  • 바람불어 2018/09/14 19:18 #

    근데 후지타는 자신의 전시프로파간다 그림을 두고 나중에 파시즘이나 전쟁협력으로 비판받을 때도 , '당시 국민의 의무라서 했을뿐'식으로 답했더군요. 현재 일본에서도 물론 알긴 다 알지만 작품전같은 거 하면 그저 '프랑스에서 각광받았던 일본인 화가'에만 집중하는듯 합니다.
  • deokbusin 2018/09/17 16:59 #

    후지타가 그린 노몬한 전투 기록화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고 하는데, 하나가 널리 알려진 용감한 일본군을 선전하는 그림이라면, 이제껏 공개되지 않은 나머지 하나는 주문자인 노몬한 전투에 참가하고 예편된 장군의 의도대로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비참하게 패전한 일본군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고 하지요.

    문제의 그림은 주문자인 장군이 소장하고 있었다는데, 현재는 그 그림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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