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드 초한전기 (2012)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 쓸데없는 영화,드라마 감상



진나라 말엽 진시황 영정의 폭정으로 신음하는 시기. 한나라의 권신 장량은 창해역사와 진시황 암살을 기획하다 실패로 돌아가게 되고 이후 시황제 사망과 함께 진승 오광의 난을 필두로 여러 영웅들이 들어서고 그 와중에 초나라의 몰락 귀족인 항우와 패현의 날건달(..) 유방이 차츰 세력을 넓혀가 반진운동의 중심으로 들어서는데...

2000년대 가면서 중화권 역사극(그러니까 무협극이나 애정물을 제외하면)은 굉장히 새로운 양상을 띄게 됩니다. 아무래도 서구나 한국. 혹은 일본의 사극을 많이 참조하여 일신을 하면서 단순히 역사서술을 떠나서 권력의 문제. 현대적인 재해석. 극화보다는 그래도  "정사"를 참조한 이야기 구성. 그리고 (한국의 일부 분들에게는 불쾌할지 모를) 페미니즘적인 재해석을 가미하게 되지요



사실 이런건 2000년대 한국 사극도 마찬가지가 아니냐..라고 하지만 중화권은 단순히 "돈지랄" "물량 지랄"을 떠나서 연출과 연기에 있어서 이걸 굉장히 재대로 끌고 나가게 됩니다. 물론 아직도 서툰 감이 없잖아 있고 이런 장점이 단점으로 바뀌는 경우가 꽤 많고.. 중국 사정상 아직은 대놓고 현재 정권에 대한 비판은 굉장히 어렵고 "역사극에서 괴력난신은 그리면 안되는" 검열이라는게 존재합니다만 이러한 제한에도 불구하고 사극 매니아들의 호평을 받는  명품사극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런 사극은 중국 최초의 대하 시즌제 사극인 대진제국부터 고희희의 삼국지(이하 신삼국)을 필두로 하여 같은 제작진과 같은 배우들(...)이 대거 나오는 초한전기와 송태조 조광윤 그리고 제작진은 다르지만 최근에 공개되서 화제가 된 대군사 사마의등이 있지요. 사실 이런 새로운 중국 사극은 한국에서도 가끔 더빙을 했습니다만 이전에 노무현 정권때 사극 징기스칸 방영으로 동북공정의 앞잡이 소리 들어가면서 (아니 왜?) 야당과 조선일보로 부터 쌍욕을 처먹고 다시 중국 역사극을 더빙하면 내가 사람이 아닌 개색기다(..)를 표방한 전례가 있는지라 한동안 뜸했습니다만 몇년전 남조선 국영보도기관 KBS가 스스로 개색기가 되기를 자처해서 신삼국을 방영했고 당연히 그 후속작(정확하게는 프리퀄이지만)인 초한전기또한 KBS가 더빙 방영했습니다.



사실 전에 초한지 관련 이야기를 했었습니다만 4대 기서로 한국과 일본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삼국연의와 달리 기본적인 원전작이 없는(없다기보다는 삼국연의만큼의 고퀄작이 없는) 초한전기인지라 초한전기 드라마 또한 대부분 "사기"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신삼국와 마찬가지로 정사와 독자적인 해석을 가미한 작으로 끌고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삼국에서도 고평릉 지변이나 이후 진의 찬탈. 그리고 오나라의 정치혼란인 이궁지변을 굉장히 암시하는 베이스 스토리들이 들어 있듯이(그러나 시간관계상 그냥 삭제해버리듯이)  이 작 역시 유방사후 벌어질 궁정 내전과 멀리 봐서는 오초칠국의 난으로 귀결되는 초기 혼란기에 대한 중요한 복선들을 각 부분마다 촘촘히 그리고 있지요.

이야기 자체도 보통의 경우 영웅집결+ 초반의 간단한 미션 클리어에 불과하게 그렸던 진의 멸망파트를 굉장히 밀도 있게 그려서 이제 막 통일한 폭정 제국과 그를 이을 기량이 안되는 후계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진시황의 후계자보다는 유능할지 모르지만 천하를 얻기에는 많이 부족한" 군벌 집단간의 난투극을 꼼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스토리 자체가 (비록 당연히 오리지널 스토리를 넣었지만) 굉장히 밀도 있게 전개되는건 부인할수 없지요





이 작은 전작인 신삼국과 마찬가지로 근원에 두는건 "권력"이라는 괴물을 그리는것입니다. 신삼국에서 조비가 왕위에 오르는 긴 과정이나 사마의의 흥망(고평릉지변에서의 대사인 "발은 왜 감추는지 아느냐?"이라는 대사가 전 시리즈의 진정한 주제입니다.) 그리고 유비의 탁고대명이나 손권의 여러 음험한 이야기(관운장의 죽게한 케이스로 여몽을 독살했다는 암시가 나옵니다.)나 호구가 아닌 노숙의 원대한 구상 등등처럼 격변의 역사에서 권력을 지키려는자와 지키는자들의 군상을 세세하게 그린것처럼 초한전기도 유진나라. 유방진영. 항우진영을 바탕으로 권력의 움직임이 특히 유방진영을 중심으로는 꽤 치열하게 그려지고 있지요.

이런 권력의 불협화음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에피소드는 유방이 화살에 맞아서 사경을 해맬때 벌어지는 척희(..). 신하들. 박희등의 움직임이나 여치가 돌아온 후에 벌어지는 유의(척희의 아들) 실종 사건 관련 스토리로서 이부분은  우리나라 여인천하(!!)를 방불케할 정도로 벌거벗은 권력구조를 굉장히 밀도있게 그리고 있고 이후 역사 전개에 대한 암시를 대놓고 그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성의 요소에 걸맞게 초한전기는 각 인물들의 성격을 굉장히 뚜렷하게 주고 있고 때로는 신삼국을 능가하는 부분도 일부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 사극처럼 악마의 처삼촌으로 "신권을 강화하자고 골방에서 자위하는 대감님"이나 "우리 임금은 노무현 같아요"하고 엠팍이나 모 게시판에서 딸딸이치는 소위 작가 나부랭이도 없습니다. 당연히 무슨 악마의 특수관계인으로  그리는 일본놈이나 중국놈 같은 건 나오지 않습니다. 초한전기는 비록 적이라고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한계와 미덕을 동시에 담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리고 있고 배우들도 그만큼의 연기력을 충분하게 소화하고 있지요




항우는 괴력과 기본 이상의 병법적인 소양이 있지만 너무나 부족한 면(그리고 때로는 고집..)을 보인 탓에 몰락하는 멕베스형 영웅이고. 유방은 건달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기량이 다른 신하들을 덮을만한 전형적인 유협영웅으로(그리고 그 와중에 미래를 보고 절망하는 걸로). 장량은 유방도 가지지 못한 대국적인 전략을 가졌지만 세상사에는 무관심한 도인 캐릭터. 소하는 충성심과 능력이 있지만 권력이란게 언제든지 자기를 몰락시킬걸 알고 알아서 기는 소인배(..)로 그리고 있지요. 서한삼걸의 1인자인 한신은 "병법은 귀신, 처세는 등신"이고 병법말고 다른 일에는 너드인. 그래서 몰락이 예정된 캐릭터로 그리고 있습니다(전 개인적으로 이 작에서 한신을 보고 유능한 버전의 503이 떠올랐습니다. ㅋ)



페미니즘 시대인지라 이 작 역시도 여성들의 비중이 신 삼국과 더불어 꽤 높아졌는데. 보통 이런 중국사에서 여성은 주로 "전리품"이나 도구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반면 신삼국에서는 초선. 정주(사마의 섹파이자. 조비의 스파이)등의 살아 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한 것처럼 이 작은 (미모와 몸매도 업그레이드함과 동시에) 여성들의 비중이 굉장히 높아졌고 또한 그 인물 개개인의 개성도 더 살아나고 있습니다. 가장 전형적인 현모양처이자 지아비를 생각하는  여성 캐릭터는 우희이고(이 배우가 신삼국에서는 정주였네요 ㅋㅋ) 여치는 "복잡한 여자 관계를 가진 남편에 속 앓으면서 가정을 지키려는 성장형 캐릭터" 척희는 사람은 좋지만 골빈당 입당 원서 쓰고 매달 4만원씩 당비 내는 권리 당원. 박희는 굉장한 정치력(과 미모)으로 주변을 파악하는 . 그리나 적어도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자중하는 캐릭터로 나오고 한국 성우분의 절륜한 연기로 확실히 인상적인 캐릭터로 다가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박희가  본처인 줄 알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자. 이런 강점에도 불구하고 초한전기는 신삼국이 가진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지요.

일단은 분량배분의 문제입니다사실 삼국지라는건 거의 50년 가까운 시대에서 공명의 사망까지를 다루어도 절반정도의 시기입니다. 극단적인 예로 공명은 적벽대전에서는 조조의 군대와 싸웠지만 오장원에서는 조조의 손자(!)의 군대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런 기나긴 역사에서 각 군벌의 내부갈등등 다양한 시간과 장소를 아울러야했습니다. 하지만 초한대전은 그 자체가 20년도 안되는 시기이고 10년 남짓할때 이야기가 진행되는 의외로 짧은 영역이고 대부분의 경우 초한 양국의 이야기로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하북의 다른 제후들을 토벌하는 한신의 이야기로 잠깐 핀트가 벗어나더라도 한번에는 적벽에서 다른 한편에선 서량으로 전개가 바뀌는 삼국지와는 다른 케이스지요

그런 길지 않은 시대를 다루면서 80부작이나 끌고 나가니 전반적으로 굉장히 이야기가 늘어지게 됩니다. 실지로 이 작을 굉장히 싫어하는 시청자들은 끝도 없이 늘어지는 전개에 학을 띄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더군다나 신삼국에서와 마찬가지로(사실 신삼국은 연장 방영때문에 형주를 둘러싼 오와 촉의 대립이 늘어난 거지만서도) 이야기가 늘어갔음에도 주요 사건을 생략하는 약점을 이 작에선 꽤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전부터 떡밥으로 남은 "유방과 신하들의 미묘한 대립" "유방의 처첩간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는 아예 생략이 되거나 마지막회에만 탁탁 몇 장면과 나레이션으로 처리하게 됩니다. 보통 전한 초기 정치사를 좀 아신다면 그나마 넘어가겠지만 전혀 관련 지식이 없는 분이라면 이야기가 맥이 탁 풀리게 되지요. 천하영웅 한신은 한 칼에  허탈하게 처리되고 인고의 세월을 보내면서 한을 삭힐 여후는 갑자기 "전에 물려받은 미나리밭이 강남 개발로 뛰는 바람에 졸부가 된 아줌마" 필을 내며 한신을 처리하고(근데 대사를 보면 한신이 오만해서라는데 한신은 오만하지도 않았고 척희와 달리 한신과 여후는 직접적인 원한관계가 없습니다.) 소하는 "그 놈 횡령했음" 대사로만 처리되고(앞부분에 자기가 살려고 자료를 조작해서 횡령범으로 가짜 고발시키는걸 다루지만서도)  장량은 나오지도 않습니다.(...)

즉 극의 기본에서 중요한 채호프의 총의 이론을 빌리자면 "총은 있지만 발사되지 않았던 " "중요한 사실은 맥거핀 아니지만 맥거핀으로 처리된"케이스라고 볼수 있지요

마지막 회 마지막 부분 유방과 서장손자 유양의 대사는..음 전작인 신삼국을 패러디(거기 나오는 유양 아역이 신삼국의 사마염 아역입니다. ㅋ) 했다고 봅니다면 "그냥 주제를 담은 문구 읽는걸 들으면서 조용히 눈을 감는 연출"과 달리 설명역과 예언가 코스프레하는(즉 말이 많은) 유방의 모습은 영 아니더군요. 좀 더 이야기를 하자면 "후대를 생각하고 눈을 감는" 사마의와 더불어 그 손자는 비록 황제는 되었지만 얼마 안가서 대차게 나라를 말아먹었지만 유방과 이야기하는 손자 유양는 "황제가 되지 못했고" 한왕조는 400년을 이어갔다는걸 생각하면 ..더 미묘한것도 사실입니다.

결론은 신삼국의 장점과 약점을 모두 가진 작이지만 약간 미묘한건 사실이군요. 몇부분은 정말 괜찮은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인 이야기구조에서 스토리를 망친 비운의 작이라고 볼수 있습니다만 사실 이 정도 퀄러티도 못 내는 한국의 실정으로 본다면 뭐라하기는 어렵습니다.

나름 추천작

덧: 초반에 나오는 진도명의 건달 연기를 호평하는 분이 있는데.. 이분의 개찌질이 연기는 젊을때 찍은 "말대황제"의 애신각라 부의가 최고입니다. 나이가 드니까 그 건달로 나와도 카리스마는 어떻게 안되더군요(솔직히 무간도 3처럼 ㅋㅋㅋ 나는 건달인데 사실인즉 중국공안의 스파이였음이라고 나올 것같은 생각마저듭니다.) 그러고보니 진도명이나 당국강 모두 두 사람가지고 중국 군주사를 써도 되겠군요(최수종이냐?)

여후로 나오는 진림은 극장판인 초한지 영웅의 부활에서도 같은 역을 맡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여후에 대한 해석은  영화판이 아주 정확하다고 봅니다만

신삼국의 조조 배우가 진시황으로 캐스팅되었습니다만 스케줄 문제로 유비 배우가 진시황으로 나왔습니다. 대신 조조 배우는 같은 감독의 작품 "송태조 조광윤"에서 조광윤(!!)으로 나옵니다만. 하여간 유비 배우의 진시황 연기도 꽤 괜찮았었습니다.(이 배우는 나중에 대군사 사마의에서 자그마치 조조 연기를 하면서 카리스마 막춤을 보여줘서 시청자들을 공포로 몰았습니다. ㄷㄷ)

개인적으로는 좀 늘어지는 감이 있겠지만 항우 사후를 2부작으로 처리하는게 나았다고 봅니다. 마지막회에서 유방의 고향방문기를 짜르더라도 1화에서 토사구팽 전반을 다루는건 좀 날림이었다는 생각마저 들지요.

TV 물이지만 의외로 패왕별희 부분은 꽤 연출이 잘되어 있습니다. 이부분은 신삼국의 여포와 초선의 최후부분을 연상케하는데(참고로 신삼국의 여포가 이 작의 항우).. 신삼국의 초선이 의외로 미모가 딸리(...)는 반면에 여기서의 우희는 꽤 비운의 여인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했지요. 글구보니 이 배우는 신삼국에서는 비운의 여인 정주역었군요.

한나라판 여인천하 이야기를 좀 하자면 작중에서 지속적으로 암시되듯이 "유방이 후계자를 척희의 소생에게 넘기는" 안이 심각하게 고려되었었고 이것은 신하들의 반대로 무산됩니다.(작중 에피소드에서 감히 후계자 논의를 하다가 신하들에게 대놓고 미움받는 척희가 이 사건에 대한 중요한 복선입니다.)

이후 척희는 유방사후에 인간돼지 형벌로 최후를 맞고(이 처우가 굉장히 잔인해서 부관참시를 은유했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한나라는 여후의 천하가 되었다가 여후 사후에 신하들의 쿠데타로 서장자 유양(그러니까 그 꼬마)대신에 박희의 소생인 유항이 한 문제로 즉위하는 결말로 가게 됩니다. 즉 에피소드에서 묘사된 "골빈당 척희. 한을 품은 여후. 국모의 기운이 흐르는 박희"가 이후 정치사에 대한 중대한 복선이였지요. 이 부분이 자막으로도 설명되지 않은게 문제지만.


덧글

  • oldman 2018/05/16 00:09 #

    이 글을 읽다보니 예전에 이 드라마를 즐겨보던 일이 생각납니다.
    저는 초반 진시황이 수레 안에서 조고에게 하는 독백을 듣고 천하를 다 얻었지만 좁은 수레 안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모습을 연기하는 것을 보고 해석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영이 항복하는 장면도 기억에 꽤 오래 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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