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탐방 외전- 정동환과 연규진씨에 대한 소고(사진추가+ 내용추가) 쓸데없는 영화,드라마 감상

댓글이 별로 없는 글에 대해서 이웃분이 코멘트를 올리셔서 보충겸 답변으로 올리는 글입니다.



1. 불멸의 이순신의 윤두수 정동환의 경우는 이웃분 말씀처럼 어떤 연기를 해도 그것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특성의 악역이다. "진주목걸이"의 지체 장애인(사고 후유증에 의한 후천적인 것이지만) 같이 몸에 맞지 않는 연기를 포함해서 의외로 연기의 폭이 넓은데 몸에 맞지 않더라도 꽤 그럴싸하게 하는게 이 사람의 장점이고 물론 몸에 맞는 연기는 그야말로 "메소드 연기가 아니더라도" 꽤 그럴듯하게 했었다.

악역의 기준으로 보면 악행을 실행은 안 해도 그걸 직접 지시하는 캐릭터라고나 할까? 정동환이 나서서 사람을 죽이거나 물고문을 하는 일은 그렇게 어울리는 일이 없지만 그걸 자기 책임하에 직접 지시하고 감독하는 건 맞는 캐릭터라고 보면 된다. 정지영의 걸작 남영동 1985에서의 이경영이나 명계남이나 실종에서의 문성근의 연기를 하라고 하면 안 어울리겠지만 그걸 지시하고 피고문자를 농락하는 능글거리는 책임자인 문성근의 연기를 정동환이 했다면 아주 어울렸을것 같다. 실지로 남자 여자 나체가 적나라하게 노출(!!)된 걸로 유명한 미니시리즈 드라마 "인간의 땅"에서 정동환은 헌병사령관 "다나까상"으로 이런 여닉를 아주 잘 보여주었다(다나까가 행불된 후로 후임으로 나온게 백윤식인데..영 안 어울렸고)

굳이 악은 아니더라도 "내가 걷는 길이 악의 길임을 알더라도 끝까지 일을 추구하는" 권력자의 연기도 꽤 괜찮았는데. 정동환표 "회장님"이 이런 캐릭터의 연장선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전쟁 발발을 주제로 해서 한국판. 도라.도라.도라를 찍으면 야마모토 제독격의 역을 하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반면에 지금 세대에서는 의외이겠지만 정동환씨는 회장님 연기와 다르게 추레한 순박한 청년연기도 꽤 곧잘하는 케이스였다. MBC 판때문에 잘 안 알려졌지만 하근찬의 여러 단편들을 조합한 TV 문학관판에서 "전쟁때 장애인이 되서 귀향하는 학도병"역을 한적이 있다. 물론 배우의 견적상으로는 학도병이 아니라 어디 나이먹은 후비대 출신의 노병같아 보이는게 흠이긴 하지만 "다리 한짝이 짤린채로 낡은 군복을 걸치고 역에서 후줄근하게 서있는" 장면은 대사 한마디 없이도 그 자체로 전쟁의 비극을 바로 보여줄수 있었다.

정동환의 이런 연기력이 꽤 잘 나오는게 문순태 원작의 TV문학관 "미명의 하늘"이다. 보통 "국군의 양민학살"(!!)을 대놓고 묘사한 탓에 문순태의 작품들은 극화가 되면  원작 훼손이 굉장히 심한데(그래서 드라마만 보고 읽었다고 행세하면 사기꾼이다. ㅋ)이 작은 그나마 원작훼손이 덜한 작품이다. 이 작에서 정동환은 "순수한 경찰이었다가 가족이 공산당에게 몰살한후 복수귀가 되었고 복수를 끝낸후에 경찰권력으로 거들먹거리다가 살인죄로 몰락해서 수감후 거지꼴로  자기가 인생을 망치게 한 여자-자기 전 애인-를 평생 찾아나서서 속죄하려는 노인"으로 나왔었다.

잠깐 잠깐 회상이나 이런걸로 처리하지만 순박한 마을청년(얼굴이?) - 복수귀- 거들먹거리는 경찰간부- 추레한 상인 전과자역을 같은 배우가 했다는게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연기를 메소드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편하게 이입하도록 집중하는 연기가 정동환의 강점이기도 했다. 김명민이나 최민식의 과장된 듯한 메소드 연기를 좋아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그 이유로 싫어하는 분들도 많지만 정동한은 같은 연기를 해도 거기 녹아들어서 배우가 잡아먹히지 않는 캐릭터라고 할까? 




 연규진(지금 세대에서는 연정훈의 부친이자 한가인의 시아버지로 더 알려진)씨의 매력은 서민적 캐릭터였다. 물론 서민이라고 일자무식은 아니고 일자 무식 집안에서 대학이라도 나오거나 농사꾼 자식이지만 기술은 가지고 있는류의 캐릭터. 대학이라고 서울대(!!)나 고시 패스같은 상위는 아니고 70-80년대 인서울 중위권이라도 나오고 능력이 안되는지. 정치질을 못하는지 그냥 저냥한 공무원이나 만년과장 정도 하는 캐릭터를 잘 소화했었다. (아마 둘리 실사판이 나오면 고길동을 하면 딱 좋겠다 ㅋ)

실지로 모 라면 회사 전문 모델이기도 했는데 거기서도 "아내가 끓여주는 라면을 애들이랑 먹거나 엄마가 가져오는거 대신 받는"류의 가장을 굉장히 잘 소화했었는데...

이분이 본격적으로 악역에 도전한게 바로 토지의 조준구역이었다.



토지의 조준구가 어떤 인간인지는 작품을 읽어본분이 많으니 패스하지만 작중 대사나 시청자들의 감상에도 있듯이 "ㅉㅉㅉ 서희 아버지나 할매만 살아 있었으면 저런 놈이 설치지는 않을건데". 즉 강한자가 있으면 피래미도 안되는 상황에서 강한자가 사라지자. 하늘 높은줄 모르고 설치는 찌질 악역을 아주 잘 소화했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찌질한걸 넘어서서 주인공과 그 주변인의 심성을 철저하게 자근자근밟아서 몰띿시키고 때로는 폭력까지 쓰는 미워하는 악역의 연기를 굉장히 그럴싸하게했었고. 이후 여러 연규진판 악역들은 조준구의 자기 복제였었다. SBS판 토지에서 김갑수(!!!)가 같은 역을 했지만 여기서의 김갑수는 TV 소설에서 보여준 한량 찌질이 개그 연기의 재현에 불과했었고 그렇게 증오감은 나오지 않는 캐릭터였었다.

조준구를 제외하면 연규진표 악역은 "절반의 실패"에서의 혼인빙자 간음(이 죄는 지금 폐지되었다)범. 마쓰모토 세이초의 "지방지를 구독하는 여자" 번안판의 협박범. 그리고 무풍지대의 임화수. 똠방각하의 동네 유지들이 있었는데... 전부 x도 안되는 한주먹거리의 찌질이가 약간의 권력으로 인간을 파멸시키는 역의 반복이었고 이 역때문인지 거의 마지막작인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에서는 다시 소시민 연기로 돌아왔지만 의외로 어필하지 못하기도 했었다.



사실 절대적인 거악과는 거리가 먼 연규진 악역에 대해서 사람들이 분노하는건 그런 악당을 우리가 굉장히 쉽게 볼수 있고 지금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같은 엘리트 범죄자를 사회에서  만나는건 무척 어렵고 그때문에 직접 파멸하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또한 흔히 보는  일본 고등계 형사나 북한 정치보위부 장교 같은 사람들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찾기 어렵다. 하지만 한줌 권력으로 인간을 괴롭히고 파멸시키는 사람들은 각계각층에서  무척 많고 이명박때문에 자살하거나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은 정말 드문 반면에 연규진류의 악역때문에 커리어나 일생까지도 망치는건 무척 많이 경험하는 것이었다.

문오장이나 이예춘같은 악역에 비해서 연규진표 악역에게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건 바로 이런게 아니었을지 생각된다.

덧: 정동환씨는 몇년전까지만해도 대학로 연극무대에 섰다고 하는데 본 사람 말로는 무대 장악력이 장난이 아니라고 한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있을때의 이야기지만 나이든 분들이 이런식으로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된다고 본다(그럼에도 나이 든 분들을 안 써주는게 현재의 비극이지만서도)

"미명의 하늘"은 정동환씨가 모종의 스캔들로 출연정지 당하고 오랜뒤의 복귀작이시다. 그래서 최대의 연기를 보여주었고 평이 굉장히 좋았었다. 작중 초반에 20년뒤 감옥에 나오면서 세상이 오랜만이구나.. 하는게 연기자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는게 아닌지 ㅋ

이웃분이 모래시계의 이종도 역을 연규진씨가 했으면 하는데 동감한다. 다만 칼질이나 클라이맥스 액션을 대역을 써서라도 이미지가 안 맞는게 있지만.

토지 이야기를 하니 덧붙이는데 조준구 부부의 악행은 조준구 마누라 역과의 케미가 필수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KBS판에서 김성녀씨가 맡은 역은 "고전마나님"+ "사치스런 여자"의 조합이 괜찮았는데(물론 이 배우의 커리어가 상당하다는 것이지만) SBS판에서 도지원은 좀 고고한 악역흉내에 지나지 않아서(여인천하식의 악역도 아니었다) 오히려 김갑수와의 케미가 떨어졌었다.

덧글

  • 플로리몽 2018/02/20 02:52 #

    김갑수옹도 나름 자기 세계가 확고한 배우긴 합니다만
    저 역시 조준구 역은 연규진씨가 제일인듯해요.
    소설속의 이미지라던가 그 눈을 듸룩듸룩 거리면서 요년 하는 그런 대사는 연규진씨가 정말 찰지게 했죠.
  • 위장효과 2018/02/23 16:58 #

    백인철씨가 저때 김두수역을 맡아서 연규진씨와 더불어 "토지 양대 악역"으로 특집기사에 나온 적도 있었지 말임다-그때도 꽤나 높은 수위의 장면들이 여러번 나왔고. 일단 토지의 시작부 그 부분부터 나름 충실(!!!!)하게 재현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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