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의 독소 전쟁(한국의 경우) 역사단상

동부전선의 신화: 미국 대중문화의 독소전쟁-결론



간만에 이글루스에서 정말 좋은 글이 나왔습니다 2차 대전 연간의 승전국인 미국에서 적국이었던 독일과 미래 적국이었던 소련과의 전쟁이었던 독소전쟁을 어떤 식으로 소화하는지. 그리고 그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글입니다.

여기서는 저 좋은 글의 하나의 논문이 아닌 잡글로서 한국의 케이스는 어떤식으로 벌어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일단 2부로 나눠서 1부는 한국대중문화의 독소전쟁을 2부는 동부전선의 신화와 같이 비슷한 예가 한국에서 특이하게 있는 것을 그리고자 합니다.

 사실 한국에서 학술/문화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학문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한것은 "국가보안법" 그리고 "국민정서법"의 문제입니다. 국가보안법의 정당성 논쟁을 여기서 하는건 글의 범위를 벗어납니다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국가보안법에 의거해서 냉전 연간의 적성국을 미화하거나 하면 법적으로 처벌 받거나 상당한 비난을 받기 일쑤였고 그런 이유로 언어 장벽 이외에도 관련 자료를 구하기가 극히 어려웠던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이건 단지 중국어나 러시아어의 장벽 이상으로- 사실 주적인 북한의 경우만 해도 언어의 장벽이 없지만- 위험했던 것이었습니다.


차라리 "국가보안법"에 의거해서 정식으로 기소되서 재판받으면 그나마 나은데 어떤 경우는 재판없이 엄하게 불법연행되서 고초를 겪는 일이 비일비재했고.(김병진의 수기 보안사에 보면 탤런트가 북한 장성 연기를 해서 인기를 끈 후에 북한 군복을 입은 자기 사진을 임의로 팬들에게 돌리다가 보안사에서 구타당한 스토리가 나옵니다) 이런 점이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의 역사를 연구하거나 문화적으로 즐기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단지 이건 북한의 경우뿐 아니라 러시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 안정효씨 회고에 의하면 소련 필하모닉이 참가한 모 클래식 전집의 경우 수입불허는 물론이요. 소개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편집장에 기관에 불려가는 일도 벌어졌다고 하니.. 그 무서움을 알법하지요.

국민정서법이라면.. 아무래도 적국(냉전때는 공산권. 그리고 지금까지도 일본)관련 문화를 즐기는데 법적인 하자가 없어도 도덕적으로 굉장한 비난을 받는 것이지요. 민주화된 시절이면 공산권의 경우는 그런것이 자유롭니다만 아직도 일본이나 북한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이야기할때 이런 국민정서법에 걸려서 고초를 겪는 일은 알음알음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독소전에 대해서 연구한다는건 불가능에 가까왔고 대부분 일본이나 서구의 연구를 들여오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냉전기의 대중서가 그렇듯이 2차 대전에서의 소련의 역할을 많이 축소하고 왜곡하는 편향된 시각으로 그려졌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그 자신이 반공주의자였던 윈스턴 처칠의 2차 대전 회고록이 2차 대전을 해석하는 방법의 주류를 이뤘고 여기에 발 맞춰 "소련의 전쟁 기여는 극히 작은"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역설적으로 독일의 시각에서도 독소전에서 싸운 장성들의 업적이 알려진건 극히 뒤의 일이었고 대부분의 경우  "소련은 뻔뻔하게 싸우지도 않고 동유럽과 만주. 사할린, 한반도 북부를 점거"했다는 이야기가 어린이 역사책에도 실릴 정도였지요. 전쟁 당시의 소련의 기계화라던가 전술의 이야기는 없이 그냥 "추위에 의존하고 사람을 갈아넣어서" 전쟁을 하는 미개한 집단(사실 이 시각은 참전 독일 장교들의 시각을 이식한 것이겠지만요)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당연히 좀 비전문적인 사이트나 회고에서도 "롬멜이 대소전에 참가했다면 소련 점령도 쉬웠을거"라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였구요

80년대 한국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타임라이프 2차 세계대전을 에서도 독소전에 대한 스토리는 전체 3권(베를린 함락을 포함한다면 4권)인데 그중 "소비에트 지규랏"편. 즉 스탈린그라드에서 베를린까지(다시 말해 쿠르스크 전투가 포함된)의 노정부분은 국내 미번역되었을정도였습니다. 그보다 다른 마이너한 전선도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한것에 비하면 턱도 없을 수준이었고..

역시 한국에서 방영된 영국 다큐 "World at war" 에서도 독- 소 전쟁은 단 4편(베를린 함락 포함)에 불과한데 소련의 부흥과 전시생활을 다룬 편이 1편. 개전부터 모스크바 전투까지 1편. 스탈린그라드만 1편. 베를린 함락이 1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베를린 함락이야 히틀러 자살이나 항복부분이 사실 대부분이고. 스탈린그라드편은 소련측의 협조 거부로 독일측 증언자와 나레이터 1인극의 형태로 진행되었고 소련의 전시생활부분은 반대로 소련측의 협조가 있었음에도 대한민국에서는 공산권 미화(...)로 방영금지되는 수모를 겪습니다.

이러다보니 독소전을 다룬 일부의 서술도 마찬가지이지요. 아직 2차 대전이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않은 시절에 나온 :스탈린그라드"라는 책은 대부분의 내용은 라이프 2차 대전을 배꼈지만 특유의 서술로 "소련은 형벌부대를 동원해서 인간을 소모품으로 쓰는" 운운의 기사가 대부분입니다. 즉 "독일은 나쁘지만 더 야만적인 소련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냉전 연간의 미국의 독소전쟁의 서술과 굉장히 비슷하지요. 심지어 T34 를 설명하면서 "이것이 북괴가 6.25때 쓰던 전차"라던가 "북괴도 소련처럼  인간을 소모품으로 쓰는 인해전술을 구사했다"라는 표현은 당대 한국의 사정을 알법합니다.

독소전쟁을 다룬 문화 역시 마찬가지엿습니다. 아무래도 영미권의 영화가 수입되었던터라 독소전은 거의 등한시 되는게 일반적이었고 독소전을 직접 다루지는 않았지만 주요한 사건인 소피아 로렌의 "해바라기"가 굉장히 오랫동안 수입이 금지된 건 이 시대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할수 있지요.(썰에는 영화에서 묘사된 공산 소련의 생활수준이 당시 한국보다 나아서라는 이야기도 돌았습니다.)


 
수입금지는 아니지만 17인의 프로페쇼날(철십자 훈장)이 바로 개봉되지 못하고 영화내에서 독일군들이 소련 여군을 윤간한다..는 괴소문이 일본발로 실린건 작품에 대한 크나큰 이해부족이라고 할수 있어요. 그냥저냥 재개봉관에서 개봉되고(가끔 명절특선으로 돌았던) 이태리제 저급  2차 대전물에서도 소련군은 그냥 단역이었고 80년대 서구권매체에서 그나마 전시중 소련에 대해서 나름 비중있게 다루어진 것이 국내 소개된건 전쟁의 바람 연작이었습니다. 대통령 특사로서 미국의 전쟁 참가 "전"에 소련을 방문해서 독소 전선을 참관하는 주인공과 러시아 장교단이 회담하고 전선을 시찰하면서 독일군의 도하 장면을 지켜보는 러시아 장교의 일갈인 "보시오 저 히틀러의 개에게 총알을 먹여줄것이요"라고 외치는 대사는 별로 문제시 될 것은 아니지만 70년대 같았으면 바로 삭제될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이러다보니 독일측에서 독소전을 그린 영화는 비록 걸작이라 할지라도 구하기 어려운 케이스가 되었습니다. 93년작 스탈린그라드의 경우는 화려한 기사와 함께 수입개봉이 예고되었지만 오랫동안 극장에 걸리지 못했고 나중에는 "수입되었지만 개봉이 안되는 영화 목록"류의 기사에 자주 나오곤 했습니다. 결국 월간조선에서 스탈린그라드 현지 취재특집기사와 함께 "이 주제를 다룬 걸작 영화가 아직 개봉이 되지 않았다"라는 한탄섞인 기사와 감독 인터뷰가 실린후에야 정식으로 개봉되었다는건. 독소전에 대한 한국의 인식을 알수 있지요

그러나 이러한 독소전의 인식이 바뀌게 된건 2000년대 이후입니다. 이건 다음 글로

 ※ 생업문제로 틈틈히 쓰다보니 늦었습니다. 독소전에 대한 글 1부. 기타 다른 글 1부로 나뉘게되었는데 편의상 1부격을 둘러 나누게 되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덧글

  • 3인칭관찰자 2017/03/20 11:22 #

    반공주의가 소련군의 활약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시도를 억압한 경우로군요..
  • PKKA 2017/03/20 20:47 #

    좋은 글입니다만 아무레도 관련자료가 워낙 부족해서인지 군사 분야와 관계가 없는 사람의 수기나 회고록이 참고자료로 쓰이는게 아쉽네요. ㅠㅠ
  • 레인보우 2017/03/20 22:56 #

    영화 해바라기와 17인의 프로페셔널은 둘다 극장에서 봤는데 하도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특히 해바라기의 경우 전쟁으로 인해 비극적인 상황으로 내몰린 한 남여의 이야기로 당시 굉장히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고 후자는 정말 독일군이 긍정적으로 그려진 것으로 역시 인상적인 영화로 기억됩니다.
    다른 장르인 만화에서는 일반적으로 독일군은 무조건 악의 화신으로 그려졌었고 일본의 경우도 고바야시
    모토후미외 몇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그런 편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야 뭐 반공이 국시였으니...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